이경준 사진전: ONE STEP AWAY
[이경준 사진전: ONE STEP AWAY]
ARTIST
이경준
그라운드시소
전시기간 2024-03-29 ~ 2024-10-13
1회방문 2024-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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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글 작성에 앞서…
[하울림: 아림의 시간]에 이어 도작가와 함께 방문했던 사진전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확실히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면 ‘다음부터 방문하는 모든 전시회는 혼자 가야겠다’라는 것이다.
이렇게만 단언하기엔 오해의 소지가 일부 있을 수 있기에 조금 더 첨언을 해보자면
도작가는 ‘사진’이라는 주제로 대화를 할 때 가장 편안하면서 즐겁고 또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다.
사진에 대한 전문성과 열정 모두 나보다도 가득한 사람이기에 내 주변에서 전시회를 같이 보러 가기에 가장 적합하다 생각되는 사람이었다.
내 주변의 대부분은 10분만에 모든 전시를 훑어본 뒤 나가자고 재촉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도작가와 나는 다른 사람의 작품에서부터 느끼는 끌림의 포인트와 감상의 방식이 너무나도 달랐다.
그리고 나의 감상 방식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유난히 긴 시간이 걸린다는 것도 깨달았다.
눈길이 끌리는 작품이라면 진득하게 그 작품을 바라보며 하나하나 곱씹어보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나의 생각들을 정리해보는 것이 나의 감상 방법인데
다른 사람과 함께 보는 전시회에서는 서로의 다른 속도를 맞추면서 이런 감상을 할 수 없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하울림: 아림의 시간]와 [이경준 사진전: ONE STEP AWAY]는 ‘온전한 나의 감상’이 아닌 ‘타인의 영향이 들어간 감상’이라 서두에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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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PAUSED MOMENTS
Golden Hour
태양이 지평선에 가까워질 때, 일출 직후나 일몰 직전의 시간
햇빛이 부드럽고 따뜻한 황금빛을 띠며,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고 대비가 낮아지는 시간대로 이때 빛은 지구 대기를 더 두텁게 통과하면서 확산되어, 강한 직사광선 대신 부드러운 조명을 연출함.
전시회에 발을 딛기 시작했을 때 마주친 작품들은 오렌지 빛으로 가득하면서 대비가 강한 도시의 풍경이었다.
노을빛을 반사하고 있는 마천루의 창문들은 아주 강렬하면서 빛이 닿지 않는 건물들과 큰 대비를 이뤘다.
깔끔한 수직, 수평과 안정적인 삼분할 구도, 규칙적인 패턴을 가진 작품들을 바라봤을 때 안정감이 가득 느껴졌다.
200mm 이상의 화각으로 담긴 듯한 사진들은 요즘 내가 추구하고 있는 망원 풍경 사진의 완성형으로 느껴지면서 감탄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경준 작가가 담고자 하는 이미지를 위해 많은 보정 과정이 물론 있었겠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복잡한 과정 없이 최소한의 단계만 거친 보정 방법이라 느껴져서 더 좋았다.
과장을 조금 보태 SOOC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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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켠에 작품 하나는 특히 인상 깊게 남아있다.
해질녘 건물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고 그 아래 길을 걸어가는 여성의 뒷모습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작품이었는데
이 외에도 깊은 심도를 가진 다른 작품들과 달리 얕은 심도를 가졌으며, 안정적인 3분할 구도를 벗어나 수직적인 구도를 강조한 작품이었다.
마치 「Begin Again」 영화 포스터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는데, 통일감이 유독 강했던 전시에서 그 통일감을 벗어난 사진이 걸려있으니 그 존재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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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Golden Hour와 Blue Hour 사이에 머물고 있는 도심의 사진이었다.
보라색 파스텔 계열의 색감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비슷한 구도 속에서도 유난히 눈길이 갔다.
만약 혼자 관람을 했다면 이 작품은 오랜 시간을 들여 감상을 했을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Way Back Home
Blue Hour도 넘어 이제 완연한 밤이 된 도심의 풍경이었는데 특별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인상 깊게 느껴지는 사진 작품도 없었고, 전시회에 대한 아쉬움이 시작되는 기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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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 MIND REWIND
Patterns & Dot
패턴이라는 소제목답게 챕터2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작품들은 정말 감탄이 나왔다.
수직, 수평마저 깔끔하게 보정한 사진들은 마치 복사붙여넣기로 만들어진 패턴과 같이 보여 너무 예뻤다.
패턴으로 가득한 도심의 풍경은 마치 현대미술과 같은 형태가 되어 다가오는데 이 부분이 참 매력적이다.
영화로 따지면 깊고 오래 여운이 남는 그런 명작이 되지는 못하지만 한 편 한 편 보는 순간들이 즐겁고 즐길 수 있는 영화라고 비유하고 싶다.
Escaping Avenue
높은 건물에서 다른 건물들을 내려다보며 찍은 사진들은 처음 몇 개의 작품들을 바라봤을 땐 신선함과 동시에 게임에 나올법한 풍경들로 신기함도 가득했다.
하지만 이런 느낌은 그렇게 오래가진 않았고, 신선함은 빠르게 사라져 지루함이 되었다. 너무나도 정직한 구도들로 인해 신선함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도 한 몪 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한국에선, 특히나 수도권 밖에선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기에 ‘그나마’ 흥미있게 감상했는데 그 다음에 이어지는 지상에 가까운 사진들은 흥미가 아예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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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도로 위 버스를 담은 사진은 라이트룸의 보정 영역을 넘어서서 과한 포토샵 레이어 보정이 느껴져 거부감까지 들 정도였다.
도로 위 버스에 포커스를 맞추고 차선을 통해 패턴과 여백을 표현하려 했다는 건 알겠지만, 애초에 그런 풍경을 스냅으로 찍은 것이 아닌 인위적으로 보정한 느낌이 너무나도 강했다.
보정 역시 사진의 일부분으로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무언가를 이루는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하지만 과한 보정은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지언정 사진이라고 부르기가 어려워진다.
여기서 또 “사진이라고 부를 수 있는 보정의 영역은 어디까지인가?”라는 사진계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라는 질문까지 이르게되지만
적어도 이 사진만큼은 보정을 자연스럽게 녹여내지못했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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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 REST STOP
Central Park
사진보다도 전시 공간의 설계에 감탄했던 챕터이다.
공간의 중심에 센트럴파크의 항공샷을 커다랗게 전시하여 균형을 잡고, 중심을 동그랗게 둘러싸는 작품들은 공원 내에서 여유를 즐기면서 통일성이 가득한 구도였다.
그리고 가장 바깥쪽은 공원 내에서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보이는 공원의 풍경으로, 센트럴파크를 주제로 한 챕터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공간 설계였다.
비록 챕터 내 전시되어있던 작품 중 마음에 와닿는 작품은 없었지만, 챕터 전체를 바라보았을 때 가장 맘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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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 PLAYBACK
마지막 공간은 체험형 전시공간으로 한 켠에는 관람객들의 고민을 적을 수 있는 종이와 펜이 구비되어 있었고, 중앙에는 그 종이를 파쇄할 수 있는 수동파쇄기가 있었다.
20~30대 젊은 일반인들이 쉽게 예술에 접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그라운드시소라고 다시 한 번 생각할 만큼 이런 요소들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주요 관람객은 20~30대 커플이나 친구들끼리 온 사람들이었고, 대부분 전시를 마무리 짓는 마지막 챕터에서 각자의 고민을 써내려가고 있었다.
여기서 또 전시회를 설계한 분에게 감탄한 부분이 어두운 계열의 용지를 사용했다는 것과 일반적인 파쇄기가 아닌 독특한 모양으로 파쇄되는 파쇄기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파쇄된 종이가 아크릴(혹은 유리)로 만들어진 통으로 떨어지고 쌓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위 두 요소가 쌓이는 모습을 더 예술적으로 표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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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의 끄트머리에서…
전시회 마지막 공간에 위치한 MD 판매공간을 둘러보면서 작가 혹은 MD를 구성한 스태프 아니면 모두와 안 맞다고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어느 전시를 가더라도 빈 손으로 나오지 않고 뭐라도 소소하게나마 뭐라도 손에 쥐고 나오려고 하는 편인데
전시된 수많은 사진들 중 선택되어 MD로 만들어진 사진들 대부분이 별로 흥미가 없었던 작품이었거나 그걸 넘어 별로라고 느껴졌던 사진들이었다.
우표 모양의 스티커 묶음을 사서 나오긴 했지만 같은 그라운드시소에서 진행한 [UTOPIA: NOWHERE NOW HERE]에 비하면 아주 가벼운 손으로 나왔다.
…아직은 나의 사진적 취향과 맞지 않는 작품을 진득하게 바라보고 해석하는 습관이 들지 않아 전시가 아쉽게 느껴지지 않았나 하는 혼잣말을 뱉으며 후기를 마무리 지으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