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상상해오던 장면이 있었다.
본가와 멀리 떨어진 회사에 취업하게 되면 자취를 시작하고, 텅 빈 방을 하나하나 채워가며 나만의 낭만과 개성이 가득한 아지트를 만드는 것.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기대와 달리 집 근처 회사에 취업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자취의 꿈은 멀어졌다.
고등학교 입학 때 꾸며진 내 방은, 간간이 가구 배치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그때 그 모습이었다.
몇 번이고 자취방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내가 꿈꾸던 공간에 맞추려면 생각보다 큰 지출이 필요했고, 그 부담에 결국 실행으로 옮기진 못했다.
그래서 ‘원 밖으로 한 걸음’을 내딛은 나는 이 공간을 먼저 비워내기로 마음먹었다.



방 한 켠에서 사진을 찍고 방 안에 존재하는 모든 물건을 꺼내 창고에 옮겼다.
세월에 바랜 벽지에는 과거 나름 뭔가 꾸며보겠다고 붙였다 떼어낸 흔적들이 남아 있었고,
못이 박혔던 구멍과 무언가 흘린 얼룩까지 시간의 흔적으로 가득했다.


그 흔적들을 지우기 위해, 나는 벽지를 뜯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집에서 굴러다니던 커터칼 하나로 벽지를 긁어냈는데, 두 시간을 들여도 A3 용지 크기밖에 벗겨내지 못했다.
이대로 가다간 올 해 안에 끝내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인터넷 여기저기를 찾아보고 다이소에 가서 2000원 짜리 헤라(스크래퍼)를 주워왔다.
이후 눈에 띄게 속도가 빨라지긴 했지만
매일 8~10시까지 하루 2시간 정도의 짧은 작업시간과 중간중간 저녁 약속, 타지역 일정으로 인해 다 떼어낼 때 까지는 2주 정도가 걸렸다.


그렇게 다 뜯어내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도배가 시작됐다.
먼저 벽지를 붙이기 전 초배지를 먼저 붙여야 결과물이 깔끔하다는 얘기를 듣고 초배지를 구매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색종이조차 벽에 붙여본 경험이 없었기에 초보자에게 추천하는 풀바른 초배지를 구매했다.
혼자 붙이는데에도 크게 어렵진 않았지만, 바닥과 정확히 수직이 맞지 않은 게 조금 아쉬웠다.
그다음엔 마찬가지로 풀바른 흰색 벽지를 선택했다.
회색 계열과 고민했지만, 조명을 켰을 때 흰 벽이 분위기를 가장 잘 살려줄 것 같은 생각에 흰색으로 결정했다.
… 쉽게 생기는 얼룩이라던지 나중에 발생할 문제에 대해서는 미래의 나에게 맡기기로 했다.


도배가 끝난 뒤에는 바닥 인테리어에 들어갔다.
강마루, 장판, 데코타일 의 세 선택지 중에서 한참을 고민했다.
일단 장판이 깔린 기존 바닥을 뜯어내고 진행하겠다는 초기 계획과 달리
기존 장판을 뜯고 평탄화 작업까지 진행하는 건 비전문가인 내가 감당하기엔 무리라는 판단이 들었고,
결국 장판 위에 데코타일을 덧붙이는 방법을 선택했다.
여러 글들에서 공통적으로 우려하듯이 나 역시 곰팡이가 걱정되긴 했는데 이미 조금 부탁한 김에 미래의 나에게 맡겨보기로 했다.
모서리처럼 모양이 복잡한 부분은 재단이 어려웠지만 붙이는 작업 자체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중간에 접착제가 떨어져 배송을 기다리느라 멈춘 기간을 빼면 총 3일 정도에 걸쳐 바닥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 창문을 열어 데코타일 본드 냄새를 빼는 걸로 하고, 거의 한 달을 채운 셀프 인테리어를 마무리했다.

결과물에 대해 100% 만족하냐고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렵다.
충분한 계획 없이 시작한 탓도 있고, 디테일에 대한 아쉬움도 남는다.
그럼에도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작업하기 전 방의 모습보다 훨씬 만족스럽다.
사회초년생의 작디 작은 월급을 생각했을 때 셀프로 진행했다 하더라도
이번에 들어간 인테리어 비용이 적지 않아 디테일한 인테리어와 가구는 차후로 미루고 조금씩 채워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