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 Tape

한국이 싫어서, 2024

회사원이라면 누구나 느낄만한 독백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내가 과연 회사를 구성하는 하나의 톱니바퀴가 맞는지, 그 톱니바퀴가 과연 의미가 있는지, 최소한 돌아가고 있는지

그 무엇에도 확신이 들지 않은 채 그저 반복되는 일상을 보내다 보면 반복되는 고리를 끊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하기 마련이다.

죽음의 나선을 제때 끊어내지 못한다면 의미도 없는 반복만을 한 채 죽어갈 뿐이니까.

여기서 멈추지 않고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라면, 어떻게 끊어낼 것인지,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이다.

충분한 생각 없이 끊고 나왔다면 어느샌가 다시 다른 고리를 돌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죽음의 나선

내가 보기엔 주인공이 그랬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얼만큼 끝없이 생각했는지에 대한 부분은 나타나 있지 않았다.

언뜻 보면 충동적으로 결정하고 떠나는 사람과 같이 보였다.

워홀이라면 가장 우선시되어야 할 기본적인 회화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이 일단 현지로 간다니.

몇몇의 사람들이 이해할만한 배경도 있었지만, 반대로 몇몇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을 사소한 이유로
가족과 남자친구의 인간관계도 끊어버린 채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갔다.

2~3년 내외의 기간 동안 대학원을 졸업한 것으로 보아 석사과정일테고, 회계학 전공이라 실험실은 없겠지만
대학원 과정에 대한 묘사는 영화 내에 존재하지 않았다.

반면 그 외에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외국인 사람들을 만나는 이야기들을 보여줬다.

워킹 홀리데이

우리나라 영화이기에 우리나라 기준으로 바라보면 워홀이라는 경력이 꼭 좋은 시선만 받지 않는다.

가끔씩은 워홀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좋지 않은 시선이 먼저 올 때도 많다.

주인공의 워홀 생활 역시 좋지 않은 시선을 느끼도록 하는 부분이 많이 묘사되었다.

영화의 중반부에서 히로인-히어로의 관계가 바뀌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히로인-히어로(?)라는 느낌의 인물들이 너무나 많아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워홀에 대한 나쁜 인상을 강조하는 느낌이었다.

감독은 과연 어떤 말을 하고 싶었을까,

보다 현실에 가까운 다큐 영화를 말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이런 방향으로 나쁘게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지적을 하고 싶었던 걸까?

이것도 아니라면 반복되는 삶을 끊어낸 뒤에 방황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따뜻한 곳을 찾아 떠나는 펭귄

한국으로 돌아와서 주인공은 다시 한 번 현실을 받아들인 채 살아가는 선택지가 있었다.

워홀 기간 동안 석사 학위는 물론이고, 영어 회화 능력을 바탕으로 토스나 오픽의 고득점은 금방일테니.

다시 나선을 돌게 될 지라도 첫 번째 나선을 끊을 때보다 훨씬 좋은 환경을 갖출 수 있고,
그 안정적인 환경 속에서 새로운 도전 역시 가능했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에 펭귄은 다시 더욱 따듯한 곳을 찾아 떠났다.

따뜻한 곳을 좋아하는 펭귄이 보다 따뜻한 곳을 찾아 살아갈 수는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를 넘어서게 된다면 펭귄은 따뜻한 환경에서 결코 살아갈 수 없다.

주인공 역시 자신이 이상적으로 추구하는 환경을 계속 좇는다면,
설령 그 이상에 도달할지라도 적응하지 못하고 죽게 될 것이다.

주변 어느 것에도 제약받지 않고 꿈꿀 수 있는 시기가 지나서 그런걸까.

구체적인 계획과 실질적인 목표가 바탕이 되지 않은 꿈은 그저 잠에서 깨면 의식하기도 전에 흩어지는 꿈처럼 느껴진다.

GPT는 신이야

따뜻한 곳을 선호하는 펭귄이 더 따뜻한 환경을 찾아 떠나는 건 가능하다. 그러나 그 따뜻함이 일정 수준을 넘어설 경우, 펭귄은 그 환경에서 생존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주인공에게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인 환경을 계속 좇아간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하거나 안정적인 삶을 보장받을 수는 없다. 오히려 그 이상에 도달하더라도, 그곳에 적응하지 못하고 무너질 위험이 크다.

아마도 주인공은 더 이상 주변의 현실이나 제약을 무시하고 마음껏 꿈꿀 수 있는 시기를 지난 걸지도 모른다. 구체적인 계획이나 실질적인 목표 없이 떠올리는 이상은, 잠에서 깬 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꿈처럼 허망하게 느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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