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elier Notes

UTOPIA: NOWHERE NOW HERE

전시회를 방문하려고 마음 먹게 된, 나를 이끌던 세글자 ‘김초엽’.

글을 쓰는 시점에서 가장 좋아하고 또 존경하는 작가이다.

김초엽 작가의 『공생 가설』이라는 책을 배경으로 전시회가 열린다는 이유만으로 방문의 이유는 충분했다.

그리고 전시회에 방문하기 전 『공생 가설』의 2회독을 시작했다.

류드밀라라는 화가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서 이제는 불타버려 존재하지 않게 된 외계 행성으로부터 온 무언가가
물리적이지 않은 형태로 인간의 뇌 속에 존재하여 공생하고 있다는 가설.

단편 소설이 실려있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1회독 할 때에도, 그리고 이번 2회독을 할 때에도 솔직히 많은 흥미가 느껴지진 않았다.


“우리는 이미 사라진 행성을 보고 있는 겁니다.

한때 실재했지만, 지금은 사라져버린 류드밀라의 세계를요.”

하지만 그럼에도 ‘그 곳’ 혹은 ‘이름없는 행성’이라는 요소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이 전시회를 기획한 사람도 비슷한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토요일의 오후, 관람하기 위해 방문한 그라운드 시소엔 꽤나 많은 사람이 있었다.

전시 공간을 기준으로 10명 내외의 사람들이 작품들을 감상하고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커플로 데이트의 한 코스로 방문한 느낌이었다.

생각을 공유할 사람도 없이 혼자 방문한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천천히, 자세히 작품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수상한 정거장

일상 생활 속 한 장면을 담은 사진의 일부분과 우주를 배경으로 사용하여 만든 작품들.

나의 시선으로 바라본 작품들은 상당수가 우주의 배경과 조화롭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부분마저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겠지만 예술 작품 속에서 정답을 찾으려 하지는 않았다.

다만, 우주라는 배경 속에서 만들어졌던 내 상상 속 장소들을 떠올리며 연상해봤다.

우주에 설치된다면 정말이겠지만, 공중에 부유해 있는 듯한 공원 뒤로 보이는 캄캄한 하늘,
단절된 듯한 공원 밖 공간으로 눈길을 돌리면 시간이 지나 광순응이 이루어지고, 서서히 점점 그리고 마침내 가득 채워지는 수 많은 별들.

고요함의 감성으로 가득한 공원 벤치에 앉아 우주를 바라보는 순간이 있으면 좋겠다.

아홉 번째 구름

여기까지 둘러봤을 때 솔직히 실망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수상한 정거장과 마찬가지로 일상 속의 사진 일부분을 잘라내 이번엔 구름과 매칭하였는데
보통의 사람들과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거나 감탄이 나올만한 그런 구도가 없었다.

현실로써 비현실을 표현하려고 했기 때문인지 오히려 더 어색하고 작품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수상한 정거장과 같이 작품을 통해 나만의 답을 상상해봤다.

어린이집에 꽂혀있던 수많은 그림책 중 하나,
사람들이 구름 위에 집을 짓고 마을을 만들어 살아간다는 별 의미와 내용이 없던 그림책이었지만
구름 속에 만들어진 마을이란 게 얼마나 감성 가득히 다가왔는지 20년이 더 지난 시간 동안 분명히 각색된 부분이 있겠지만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다.

물리적인 한계를 뛰어넘은 3차원의 구조로 이루어진 거리는 우주와는 다른 퐁신한 감성으로 가득하다.

생기 가득한 지브리 감성의 노래가 주변을 감싼다면 주변엔 평화로 가득 차지 않을까

조용한 마을

전시회에 대한 정보를 먼저 찾아보던 중 가장 눈길을 끌었던 작품이 있던 세션이었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모두 가지고 있는 듯한 묘한 느낌의 물에 잠긴 세계.

마치 알 수 없는 이유로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한 순간에 사라지고 방치된 지구와 같았다.

특히 물에 잠긴 지하철을 표현한 작품들은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앞서 걸어왔던 두 세션은 두 레이어가 너무나 어울리지 못해 아쉬움이 느껴졌다면
조용한 마을은 작품 전체가 그림와 사진의 어느 경계에 있는 듯한, AI 이미지와 같은 이질적인 느낌을 받았다.

이 이질적인 느낌은 현실엔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라는 주제와 어우러지면서 크게 와닿았다.

이 전시회의 배경이 되는 『공생 가설』에서 류드밀라가 그린 그림을 보고 사람들이 알 수 없는 그리움을 느꼈다는 부분이 있는데
나에게 ‘그 곳’이자 ‘이름없는 행성’은 조용한 마을이 묘사한 세계였다.

떠오른 기억

《Journey》 혹은 《Monument Valley》라는 게임이 연상되는 세션이다.

사막이라는 배경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색깔들의 조화는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수 없는 잃어버린 문명을 떠오르게 한다.

다만 내가 생각하던 잃어버린 문명보다 너무나도 화려한 색깔을 가진 탓인지, 아니면 단지 깊은 영감을 받은 조용한 마을 다음 구역인 탓에 무덤덤하게 느껴졌는지.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쉬움이 잔뜩 느껴졌다.

혼돈의 싸이키델리아

작품을 깊게 감상하는데 감정소모가 심한 작품들이 있다.

혼돈의 싸이키델리아에 전시되어있는 작품이 그러한 경우인데 의외로 혼돈의 싸이키델리아는 혼돈으로 가득 차 있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검은색과 흰색의 규칙적인 배열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시각적인 착각을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이와 같은 유토피아는 내가 상상하던 모든 것들이 현실로 채워지면서 과정과 도출을 거치지 않고,
의식의 흐름대로 채워지면서 어떤 규칙도 찾아볼 수 없지만 현실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싸이키델리아를 글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어렵긴 하지만 쓰고 나서 스스로 봐도 이해하기 힘든, 그렇지만 구체적인 모습이 존재하는 유토피아이다.

동화적 회상

‘몽환’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고 트렌드하다고 느껴지는 색으로 가득한 세션이다.

색깔 뿐만 아니라 구름, 열기구, 파스텔 색깔의 집까지 흔히 말하는 ‘요즘 감성’이었다.

데이트 코스 중 하나로 전시회를 보러 와서 즐기는 미디어 아트로는 너무나도 좋다고 생각했다.

편안하고 낭만 가득한 파스텔 계열의 유토피아 역시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세계지만 그럼에도 너무 무난하고,
전시회에서 말하고자 하는 유토피아와 거리감이 살짝 느껴져 아쉬웠다.

마침내, 안식

이전 구역들이 모두 조금씩 존재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느 부분은 아홉번째 구름과 같은 구성 방식을 느꼈고, 그 사이사이 혼돈의 싸이키델리아가 섞여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또 어느 부분에선 동화적 회상과 같은 파스텔 느낌과 함께 다른 구성 방식으로 다가오니
다른 한 아티스트가 구성했다면 단지 내 착각이겠지만, 이러한 느낌을 확실히 받았다.

: 현실에서는 달성하기 어려운 이상적 상태

현실에선 존재할 수 없기에 유토피아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많이 쓰이는 것 같다.

그렇기에 유토피아라는 단어는 긍정적 의미와 부정적 의미를 모두 지닌 복합적인 느낌을 받는다.

전시회를 다녀온 날 늦은 저녁까지도 유토피아에 대해 한참동안 곱씹었다.

나의 유토피아와 현실에 대해.

그리고 현실 속에서 유토피아를 흉내내고 찾아가는 과정에 대해.

혼자 가는 전시회는 정말 오랜만이었는데 주변의 눈치를 완전히 무시하지 못해 보다 더 천천히 감상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그래도 다시 전시회를 다녀보는 첫 시작점이라고 의의를 두고 싶다.

전시회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그 순간만큼은 온전히 나의 유토피아를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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